제목 | 곡식 영그는 무렵 안동소주 맛에 빠지고 향에 취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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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라이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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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 ridebbuu@naver.com |
연락처 | 010-- |
날짜 | 2025-10-17 |
안동 더 다이닝 우리술 여행안동 소주명가 탐방 프로그램 개발술 빚기 안주 페어링 칵테일 등 체험공식 양조장 9곳에 맹개마을 포함밀로 만든 밀소주 도 우리술 인정도수 높을수록 맛은 깔끔 향은 정돈전통 음식까지 곁들이면 술상 완성 우리술 은 사실상 없다고 믿었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전통주는 죄다 자취를 감췄다는 게 일반적인 판단이었습니다 한데 천년 넘게 최소 수백년은 족히 이어 온 지혜가 기껏 40여년의 통제에 묻힌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우리술 은 고서 속에 가문과 지역의 울타리 안에 조용히 살아 숨쉬고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술 을 현실 세계에서 사라지게 만든 건 우리 한국인입니다 그 과정을 이해해야 우리술 을 더 깊이 좋아하게 됩니다 특히 전통주의 영혼 이라 할 소주의 역사는 밑줄 긋고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곡식이 영글 무렵이면 술도 익는다 때는 바야흐로 오곡이 무르익은 만추의 계절 술 빚는 고을 경북 안동을 찾은 건 그래서 거의 순리에 가깝다 불살라 만든 술 소주 먼저 소주의 정의부터 내리자 이 과정이 퍽 드라마틱합니다 소주 는 불살라 만든 술입니다 청주 SK VIEW 자이 곡물로 빚은 양조주 를 불살라 그 영혼 이라 할 알코올만 취한 것입니다 이 과정을 증류 라 부른다 반면 한국인과 더불어 세계가 즐겨 마시는 현재의 희석식 소주는 우리술 소주의 원형이 전혀 아닙니다 그 숨 가쁜 이야기는 잠시 뒤에 이번 안동 여정에서는 사회 흐름에 맞춰 우리술 을 우리 술 로 띄어 쓰지 않기로 합니다 우리나라 라는 단어처럼 우리술 도 보통명사화해 보겠다는 노력으로 이해하면 맞을 듯합니다 나라 안 곳곳에서 우리술의 역사를 다시 세우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중 한 곳이 안동입니다 안동에서 우리술이 살아남은 과정은 다소 얄궂다 보수적이고 봉건적이어서다 핵심은 봉제사 접빈객 문화다 제사를 받들고 손님을 대접한다는 뜻입니다 반상을 가리지 않고 제사상에는 좋은 음식과 훌륭한 술을 올렸습니다 손님 밥상도 마찬가지다 비록 개다리소반에 내놓을망정 밥상 위에 온기를 담지 않으면 안 됐습니다 그때 필요한 게 소주였습니다 물론 우리술을 안동에서만 만든 건 아닙니다 한데 안동은 우리술을 만들고 소비할 능력과 문화를 고루 갖췄다 이런 환경을 가진 곳은 많지 않습니다 조선 왕조의 관향인 전북 전주 등 일부에 그칩니다 일제강점기와 근현대를 거치는 동안 우리술이 몇몇 지역에서만 완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안동의 봉제사 접빈객 문화에 소주 명가 탐방을 곁들인 여행 프로그램이 최근 선보였습니다 안동 더 다이닝 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 안동소주 명인 안동시 등이 함께 만든 일종의 시제품입니다 공식 명칭은 2025 K미식 전통주 벨트 사업 운용사는 코레일관광개발입니다 기차와 버스를 타고 1박 2일 동안 안동을 돌아본다 안동소주와 안주 곁들임 은 물론 퇴계 종택 등 안동에 전해 내려 오는 가양주와 금소마을 전계아 페어링 청년 팝업 업체 잔잔 의 안동소주 칵테일 체험 예천임씨 금양파 종택의 막걸리 빚기 체험 등으로 구성됐습니다 1011월 사이 4차례 진행 예정입니다 이번 여정 역시 안동 더 다이닝 을 미리 엿보는 것으로 꾸렸습니다 구미 원호자이 더 포레 안동소주 양조장은 공식적으로 9곳입니다 여기에는 밀소주를 만드는 맹개마을이 포함됐습니다 이는 쌀뿐 아니라 밀로 만든 소주도 우리술의 영역에 포함된다는 선언적 의미로 여겨집니다 우리술 심장 누룩은 죽음의 통근버스 양조장은 세 곳을 방문합니다 안동소주의 큰 흐름이 세 줄기로 분화되는 현실에 조응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세 곳의 양조장에선 공통적으로 소주의 역사와 빚는 방법을 배운다 이게 퍽 재밌다 비슷한 방식으로 증류해 낸 소주가 뭐 그리 다를까 싶은데 저마다 특유의 맛과 향을 갈무리한다는 게 흥미롭다 민속주안동소주 는 안동소주의 원형에 가까운 술입니다 오로지 증류주 원액으로만 알코올 도수를 조절합니다 위스키로 보자면 싱글 몰트라 할까 이 브랜드를 만들고 키운 조옥화 명인은 별세했습니다 아들 김연박 명인과 당시로서는 무척이나 보기 드문 이과 여대생 이었던 배경화 부부가 제조법을 전수해 만들고 있습니다 호불호가 갈리는 편인데 원인은 누룩취라는 독특한 향입니다 발효차인 중국 보이차처럼 발효 과정의 향이 술에 남아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질적으로 느껴지지만 익숙해지면 그 향에 코가 꿴다 김 명인에 따르면 술이 본격 출하되기 시작한 1990년 무렵에는 이를 사려는 이들이 오픈런 을 벌였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새벽부터 줄을 선 이들을 상대로 국수와 빵 등 먹거리를 파는 이들까지 들어서며 공장 앞이 장사진을 이뤘다는 것입니다 명인안동소주 는 반남박씨 가문에서 700년 가까이 이어 왔다는 비전의 술입니다 박재서 명인과 아들 박찬관 명인 손자 박춘우씨 등 3대가 술을 빚는다 핵심은 역시 45도 소주다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알코올 도수를 19도 정도로 낮추거나 변형을 주기도 합니다 호불호가 덜하고 진입 장벽도 상대적으로 낮은 소주로 꼽힙니다 요즘 젊은 세대와 외국인을 중심으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안동소주 칵테일의 베이스로도 널리 쓰인다 맹개마을 진맥소주 는 개혁적이면서 개척자적인 술이라 부를 만합니다 안동과 맹개마을을 소주의 떼루아 로 만들겠다는 큰 그림도 넌지시 엿보인다 진맥소주는 독일에서 번듯한 정보기술 업체를 운영하던 김선영 박성호 부부가 유턴 해 만든 브랜드다 아내가 대표 남편이 이사입니다 이들이 한국에 돌아온 지는 정도 됐고 소주를 상품으로 내기 시작한 건 몇 해 전부터다 이들의 가장 큰 파격은 밀소주다 안동에서 소주의 3요소는 무조건 쌀과 누룩 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진맥소주는 쌀의 자리를 밀로 대체했습니다 근거는 수운잡방 등 고서에서 발굴한 진맥소주의 역사 다 박 이사는 문헌상 안동의 첫 소주는 1270년 쌀이 아닌 밀로 만든 진맥소주 라고 단언했습니다 진맥소주 라는 상품명은 여기서 비롯됐습니다 이쯤에서 소주 꼬기 과정을 짚고 가자 그래야 이해하기가 수월합니다 맹개마을의 박 이사 강연과 책 우리술 익스프레스 등을 요약하면 이렇다 안동의 소주 역사는 700년을 훌쩍 넘긴다 소주 제조법이 건너온 건 원나라 때다 1200년 말1300년대 원나라에서 교육받은 고려 충렬왕 공민왕 등이 몽골 침입기에 임시 수도를 안동에 꾸리면서 소주 제조가 시작됐을 것으로 본다 우리술의 심장은 밀로 만든 누룩입니다 누룩은 사실 죽음의 통근버스 다 누룩곰팡이와 효모라는 두 숙련공 을 알코올 제조 공장까지 빠르고 안락하게 모시는 역할을 합니다 누룩곰팡이는 곡물을 당분으로 만드는 당화 전문가 효모는 이 당분을 먹고 발효시키는 발효 전문가다 다른 지역에서는 두 숙련공이 한 버스를 타는 일은 별로 없다고 합니다 한데 동아시아 특히 한반도에서는 둘을 함께 태운단다 이를 병행복발효 라 부른다 당화와 발효가 동시에 진행된다는 의미다 두 숙련공이 절정의 신공을 펼치면 술독 안에 알코올이 들어차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역설이 생긴다 알코올은 지상 최고의 살균 머신 입니다 알코올이 도에 이르면 저를 만들어 준 효모를 죽이기 시작합니다 술 단지 안의 참혹한 패러독스다 이 탓에 세상 어떤 양조주도 도를 넘길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당 선조들은 알코올 도수가 높아질수록 맛이 깔끔해지고 향이 정돈된다는 것을 기막히게 체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안한 방식이 증류다 양조한 밑술 을 소줏고리라는 용기에 넣고 불을 때면 끓는다 물은 100도이지만 알코올은 78도에서 먼저 끓는다 밑술에서 기화된 알코올은 찬물을 담근 소줏고리 천장에 부딪히며 순정한 알코올로 맺힙니다 넣지도 않은 과일 향 까지 곁들여집니다 이를 용기 밖으로 빼내면 비로소 증류가 완성됩니다 순정한 술을 향한 선조들의 관찰과 노력이 그저 감탄스럽다 원액 알코올의 2 는 천사의 몫 증류가 곧 완성은 아닙니다 반드시 숙성을 거쳐 단정해져야 합니다 동양에서는 항아리에 서양에서는 주로 오크통에 숙성시켰습니다 둘 다 숨을 쉬는 용기라는 게 공통점입니다 최근 위스키에 열광하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오크통에 소주를 숙성시키는 양조장들이 생겼습니다 예의 맹개마을도 그렇다 오크통에 숙성시킨 소주를 맹개마을 소셜미디어 에 올리면 비싼 가격에도 15분 만에 완판된다고 합니다 나무는 품은 알코올을 밖으로 내보낸다 숙성실 공기에는 알코올이 함유돼 있는데 이를 에인절스 셰어 라 부른다 보통 1년에 1 5 정도인 스코틀랜드와 달리 안동은 기후 탓에 56 에 달합니다 10년이면 원액의 70 가까이를 천사 에게 바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걸 낮추는 게 저온 숙성인데 그래도 천사의 몫이 연 2 에 이른다고 합니다 한국은 천사들도 술을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여기에 이르는 과정이 최소 11단계다 병입 포장 출고 등까지 포함하면 양조장에 따라 1415단계를 훌쩍 넘긴다 우리술이 비쌀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제 우리술의 명맥이 끊긴 드라마 를 살펴볼 차례다 전통주의 숨통을 먼저 조인 건 일제다 목적은 쌀 수탈 더 많은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일제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전통주 제조를 막았습니다 해방 이후 근현대로 이어지면서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나라에는 먹을 게 부족했습니다 6 25전쟁과 가난 속에서 쌀은 식량으로 우선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정타는 1960년대 후반 발효된 양곡관리법입니다 당시 정부는 쌀과 보리로 술 빚는 것을 법으로 막았습니다 일제의 탄압 아래서도 근근이 명줄을 잇던 소주는 이 법이 시행되면서 살길이 아예 막혀 버렸습니다 이후 쌀 막걸리 대신 밀 막걸리가 우리 입맛을 대체했고 에탄올 덩어리 주정을 물로 희석한 현재의 희석식 소주가 표준이 됐습니다 우리술이 다시 식탁으로 돌아온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 무렵입니다 다만 이 과정을 정치적 으로 해석하려 들면 답이 없는 무저갱으로 빠지고 만다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나누고 분리하길 즐기는 정치인들이 또다시 이를 정치 영역으로 끌고 가려 해도 슬기로운 국민이 단호히 막아 주길 기대합니다 맛있는 한잔 맛있는 한입술상의 완성은 페어링입니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에는 문어 닭고기 등의 육류가 잘 어울립니다 이런 곁들임 음식에 관한 연구와 개발도 활발합니다 그중 한 곳이 금소마을입니다 저 유명한 안동포 산지여서 예전에는 안동포 마을 이라 불렸던 곳입니다 옛 건물을 재활용한 마을 안 연화단지 방앗간 에서는 가양주와 전계아 등 옛 음식의 페어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가양주 는 집에서 담근 술 입니다 일제 이전만 해도 나라 전체에 300여종의 가양주가 있었다고 합니다 안동소주는 그중 하나다 가문마다 술을 담그는 방식도 달랐습니다 그 맛은 아마 맏며느리 종부 의 손끝에서 결정되지 않았을까 싶다 연화단지 방앗간에서 퇴계 가문에 전해 온다는 노송주 의성김씨 문중의 온주법 레시피로 만들었다는 황금쥬 등의 가양주를 배추전 등 토속 음식과 곁들여 맛볼 수 있습니다 고택 금곡재에서 안동포 짜기 시연도 진행되는데 마을 할머니들의 예능 끼 가 어지간한 연예인 뺨칠 만큼 능란합니다 여행수첩맹개마을은 사유지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각종 프로그램을 예약하고 들어가야 합니다 안동 전통주 칵테일 택시 도 별도 운영됩니다 개별 여행객들을 위해 안동 관광택시 안동관광협회 등과 협업해 만들었습니다 31일 11월 1 7 8일 운영됩니다 7시간 탑승을 기준으로 1대당 5만원 할인 전통주 프로그램 참가비 지원 등의 혜택도 준다 코레일관광개발 참조 |